1. 고통을 받아들이면 해탈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가 될 말을 했을 때 나도 참지 않고 그에게 받은 만큼 돌려주면, 나의 카르마는 끝나지 않고 다른 쪽에서 더 큰 상처로 다가오고 이번 생에서 해소해야 할 카르마는 사라지지 않고 다음 생으로 넘어갑니다. 참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 평정심을 갖게 하는 것이 해탈입니다. 상대는 자신의 업에 의해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세계에 살고, 나는 그의 말에 휘둘리지 않으면 됩니다. 고양이 야옹, 오리 꽥꽥 같은 그저 의미 없는 소리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평소 마음공부가 잘 닦여있으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평정심을 유지하기 쉬워지면 흔들리는 감정은 봄바람처럼 가볍고 상처가 되지 않습니다. 물질적인 성취는 더 이상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시점부터 마음의 안정과 영성에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통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숨을 크게 한 번 쉬고 받아들이면 행복해집니다.
2. 윤회의 고통을 통해서 해탈한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 완전한 세계의 일부이고 해탈한 영혼들입니다. 완전하고 해탈한 자들인데 왜 지금 고통을 받을까요? 태어나기 전 인생이라는 한 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씁니다. 중요 테마를 설정하고, 환경을 세팅한 후 만나게 될 인연의 카르마를 배치한 후에 망각의 터널을 거쳐 이번 생의 가장 완벽한 인연인 자궁 속으로 들어와 인간의 삶을 시작합니다. 그럼 태어나지 않으면 고통이 없을 텐데, 도대체 왜 윤회를 선택할까요?
3. 윤회라는 고통을 선택하는 이유
인생을 세팅하고 새 삶을 시작했지만 해탈을 이루지 못하면 생을 마감한 후에도 아스트랄계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때 깨달음을 얻어서 카르마가 소멸하면 즉시 첫 번째 영계로 이동합니다. 이곳에서 원한다면 가족을 만날 수도 있고 반려견, 반려묘도 만날 수 있습니다. 도서관 문이 열리면 영혼은 이동합니다. 모든 기억이 사라집니다. 그곳에서 윤회를 선택할 것인지 남을 것인지를 자유의지로 정할 수 있습니다. 윤회를 선택한 사람은 도서관에서 고통을 해탈로 연결할 수 있는 지혜를 공부하고 카르마에 관한 공부가 끝나지 않은 영혼은 다시 인간 세계로 내려와 지난 생에서 깨닫지 못한 카르마를 복습합니다.
4. 끝없는 윤회가 고통이 아닌 이유
우리는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또한 죽음도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도 마음속에 만 존재하고 기쁨과 고통도 실체가 아닙니다. 마음은 참나가 떠올리는 무의식의 텅 빈 공간에 존재합니다. 텅 빈 공간이라는 것도 마음속에 존재합니다. 텅 빈 공간이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는 무아(無我)라고 표현합니다. 나 스스는 고요하나,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서 저세상을 가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는 참나는 그대로 존재하고 영화처럼 바뀌는 장면들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는 인간 객체 중에 한 사람인 '나'로 여겨질 수밖에 없지만 육체라는 옷을 벗으면 전체가 하나인 '나' 즉 '신(神)'입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문명이라는 틀 안에서 지구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네트워크'처럼 서로 연결된 것으로 보이지만 '신'의 존재인 '나'가 볼 때는 전체가 그냥 '나'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내가 윤회한다.'가 아니라 처음부터 나는 고요한 상태였고, 윤회의 고통은 진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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